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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갈래로 찢긴 비극의 땅 김화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 전쟁의 상흔 남은 김화 방문, 기도회 개최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이하 '쥬빌리기도회')에서는 분단의 현실을 눈으로 바라보고 몸으로 느끼며, 바벨론 강변에서 시온을 기억하며 우는 (시137:1) 마음으로 기도하기 위해 지난 10일 DMZ의 정중앙에 있는 김화승리전망대를 찾았다. 여기엔 분단을 아파하고 통일을 열망하는 100여명의 한국교회 성도들이 함께했다.

   
▲ "화강"의 역사 앞에서 -통일코리아 발행 편집인,PN4N대표,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대외협력처장인 오성훈목사

쥬빌리기도회는 매년 봄, 가을 일 년에 두 차례씩, 서쪽에서 시작해서 동쪽으로 향해가며 DMZ 기도회를 진행해 오고 있다. 그동안 진행된 기도회는 다음과 같다.

1차는 2011년 6월 11일(토), 방문지는 강화였으며 연미정, 제적봉평화전망대,강화성공회등을 방문했다. 1893년 강화도에서 제일 먼저 설립된 교회인 교산교회에서 기도회를 진행했다.

2차는 2011년 11월 5일(토), 판문점, 판문점교회(대성동 자유의마을 소재)를 방문했다. 문산에 위치한 세계사랑교회에서 기도회를 진행했다.

3차는 2012년 6월 16일(토) 철원의 로동당사, 철원제일감리교회 옛터(폐허)와 제2땅굴, 철원평화전망대등을 방문했다. 서기훈 목사 순교지인 장흥감리교회에서 기도회를 진행했다.

2012년 11월 10일(토), 제 4차에는 DMZ의 정중앙에 있는 김화승리전망대를 찾았고, 앞으로는 다음과 같이 진행될 예정이다.

제5차는 2013년 봄 양구의 을지전망대, 제4땅굴, 한반도 섬을 방문할 예정이다. 제6차에는 2013년 가을 1박2일로 고성에 위치한 고성평화전망대와 DMZ 박물관을 현장답사 후에 방문할 예정이다.

   
▲ 김동진 曲/김용호 詩 저 구름 흘러가는 곳 아늑한 먼~ 그~곳 그리움도 흘러가~라 절로 노래가 나오는 곳, "화강"

세 갈래로 찢긴 비극의 땅 김화 
김화는 찢기고 만신창이가 된 비극의 땅이다. 예전에는 금화라고 많이 불렀다. 철원 로동당사 앞과 승리전망대 부근 암정교 앞에 있는 도로원표 등에는 금화라고 되어 있다. 암정교 옆의 도로원표에는 탄흔이 많아서 이곳이 격전지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분단 이전 김화에는 1읍 11개 면이 속해 있었다. 서울과 원산을 연결하는 교통 요지로서 번창한 곳이었는데 특히 금강산 전기철도가 유명했다. 금강산 전기철도는 1919년에 착공되어 1924년에 먼저 철원-김화간이 완공되었고, 1931년에 창도를 거쳐 내금강역까지 전 구간이 완공되었다. 당시 대 명물이었고 금강산 관광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우리가 방문한 승리전망대에서는 금강산 전기철도가 놓여있던 자리와 광삼역 자리가 보인다. 그리고 김화읍 도창리에는 금강산전기철도 교량이 남아있다.

김화는 38선 이북에 있어서 분단과 동시에 북한 땅이 되었다. 당시 김화에서는 반공활동이 활발했다. 6.25 전쟁 당시 김화는 그 어느 곳보다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다. 당시 철원, 평강, 김화를 '철의 삼각지대'(Iron Triangle Zone)라고 불려졌다. 하지만 김화 전체가 건물은 물론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온전하지 못한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다. 오늘 방문한 저격능선전투전적비는 그때의 형편을 말없이 증언해 준다.

지금 김화는 세 갈래로 찢겨 있다. 예전 김화의 중심부는 민간인출입통제선(이하 민통선)에 있다. 지금은 대부분 논이 되어 있으며 적지 않은 부분이 비무장지대 안에 들어 있다. 70%는 민통선 이북에 들어 있다. 북한에도 김화군이 있다. 필자가 [DMZ와 교회]를 집필할 때 가장 애를 먹은 부분이 바로 김화군이다. 여러 갈래로 찢기고, 여러 차례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뒤죽박죽이 되었기 때문이다.

   
▲ 화강 앞에서 북한교회연구원이자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 상임위원, [DMZ와 교회] 저자인 유관지목사가 함께 한 사람들에게 김화와 교회,화강의 역사와 유래, 감회를 전하고 있다.

김화는 강원도에서 복음이 제일 먼저 전해진 곳이다. 우리가 방문해서 기도회를 갖게 되는 지경리는 강원도 교회들의 출발점이었다. 남과 북의 많은 교회들이 6.25 전쟁 당시 피해를 입었는데 이 지역에서는 전투가 유난히 치열했기 때문에 이곳에 세워진 수많은 교회들도 대부분 파괴되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번 DMZ 기도회에서 우리는 제일 먼저 옛 김화의 중심지가 보이는 승리전망대에 올랐다. 승리전망대의 일부는 마현인데, 1959년 사라호 태풍 때 살 곳을 잃은 경북 울진 주민들을 이 일대로 이주시켰기 때문에 이곳 주민들의 말투에서는 경상도 억양을 느낄 수 있다.

1984년 고성통일전망대를 시작으로 하여, 남방한계선 곳곳에 전망대가 세워졌다. 제적봉평화전망대(강화군 양사면)-오두산통일전망대(파주시 탄현면)-도라전망대(파주시 장단면)-태풍전망대(연천군 중면) 열쇠전망대(연천군 상서면)-철원평화전망대(철원군 동송읍)-승리전망대(철원군 근남면)-칠성전망대(화천군 상서면)-을지전망대(양구군 해안면)-고성통일전망대(고성군 현내면) 등이다. 이밖에도 규모가 작은 전망대들이 여럿 있으며, 연미정과 같이 전망대가 없더라도 북을 잘 조망할 수 있는 지점들도 있다.

그 가운데서 이번에 우리가 찾은 승리전망대는 군사분계선 정중앙에 있고, 예전 금화군의 중심지, 화강, 오성산, 북한군 하전사교육장, 하소리협동농장 등 다양한 곳들을 조망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 최고령참여자(78세,이영희.고향;사리원,살던곳;평양) 실향민과 함께-유관지목사

김화지역은 저격능선전투가 벌어졌던 혈전장이었다. 저격능선은 오성산 우측 능선을 말한다. 1951년 10월, 미25사단이 이 능선을 확보하려 할 때 중공군 저격병이 능선에 노출된 미군들을 저격하여 희생자가 많이 발생하자 미군들이 이 능선을 'sniper ridge'(능선을 건 치열한 자리싸움)라고 부른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오성산은 승리전망대에서 마주보이는데 북에서는 '오대봉'이라고도 한다. 6.25전쟁 당시 중공군 12군과 15군의 4개 사단에 맞서 국군 2사단과 9사단이 싸웠는데 6주간에 42회 육박전이 벌어졌고 국군이 발사한 소총탄이 416만발, 포탄 17만 발, 사상자는 적군이 14,867명 국군이 4,683명을 기록했다. 이 전투 이후 중공군은 국군의 전면에 나타나는 것을 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북의 백과사전에도 '오성산 전투'라는 항목이 있고, 중국에서도 이 전투를 소재로 하여 1956년 '상감령 전투'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만든 것을 보면 저격능선전투(sniper ridge)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철원군 김화읍 청양4리에 있는 저격능선전투기념비는 이 전투를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1957년 7월1일 육군 제5군단에서 세운 것인데 오래 전에 세웠기 때문에 좀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비 앞에는 포구를 북의 오성산으로 향한 대포가 놓여있다.옛 격전지 앞에서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와 자유, 번영은 피의 댓가를 지불한 고귀한 선물인 것을 확인한다.

   
▲ 저격능선전투전적비- 비문의 말미다. "조국을 지킨 그대들의 충혼은 태양이 솟는 날까지 영원히 빛나리니 온 겨레의 뜨거운 정성으로 그 뜻을 여기에 세우노라."

 

 DMZ기도회는 지경리에 있는 지경교회에서 갖게 되었는데 지경리는 그 유명한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단초가 되는 곳이다. 흔히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은 원산대부흥운동에서 시작되었고 원산대부흥운동은 하디 선교사의 회개에서 시작되었다고들 하는데, 지경리는 하디 선교사의 숨결이 어려 있는 곳이다.

지경리는 경기도와 황해도, 강원도가 경계를 이루는 곳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하디 선교사는 이곳에서 열심히 사역하였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에 대해 하디 선교사는 "나는 3년 동안 지경대지역에서 어떤 다른 지역보다 애써 일하였으나 그곳에서의 선교사역의 실패는 나에게 말할 수 없는 타격을 안겨 주었고 사역을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절망감을 안겨주었다"고 했다. 그는 그 원인을 교만, 심령의 강퍅함, 그리고 믿음의 부족이라고 말했다. 그는 1903년 8월 원산에서 열린 선교사 사경회 때 성령체험을 하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교만을 공개적으로 고백했다. 이 일을 계기로 원산부흥운동이 일어났고, 이것이 평양대부흥운동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예레미야는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애4:21)라고 기도했는데, 우리는 평양대부흥운동의 단초가 된 뜻깊은 지역에서 합심하여 기도했다. "북한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평양이 영적으로 옛적 같게, 아니, 그 이상이 되게 하옵소서!"

   
▲ 저격증선전투전적비의 피어린 역사와 주검앞에서 손에 손을 잡고 '통일한국'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

<목사, 북한교회연구원 원장>

유관지  yookj4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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