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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의 쌍무지개

사단법인 평화한국이 주관한 제6기 중국평화발걸음에 동참해서 지난 달 중순에 조중변경(朝中邊境) 일대를 탐방하고 돌아왔습니다. 압록강 서쪽 끝인 단동(丹東)에서 출발해서 고구려의 옛 수도인 집안(集安)을 거쳐 장백조선족자치현(長白朝鮮族自治縣)에서 주일예배를 드린 후 통해 백두산 서경구(西景區) 입구로 향했습니다. 잘 아시는대로 백두산을 오르는 길은 북한에 속해 있는 동파(東坡)를 비롯하여 서파․남파․북파, 네 갈래가 있습니다.

서파를 통해 백두산에 오르는데 날이 흐리고 간간히 비가 뿌리기에 ‘이런, 이번에는 기록이 깨지겠는 걸!’ 여러 번 혀를 차며 아쉬워했습니다. 백두산은 기후가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정상에 올라도 천지를 볼 수 있는 확률이 그리 높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20% 정도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30% 안팎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는 백두산에 대여섯 번 올랐는데 다행히 오를 때마다 천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날씨가 이 모양이니 이번에는 드디어(?) 천지를 보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 거의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색은 하지 않았습니다.

   
▲ 서파의 백두산 정상 부근. 통일 등정(登頂)에서 우리는 지금 이쯤 와 있는 것이 아닐까? ⓒ유관지 제공

서파의 끝에는 1,442개의 계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버스를 내려 계단을 오르는데 어느 청년이 “박사님, 날씨가 이런데 정말 천지를 볼 수 있을까요?” 물었습니다. 저를 ‘목사’라고 부르지 않고 ‘박사’라고 부른 것은 출발 전에 “여러분, 중국에서 저를 목사라고 부르면 벌금 천 원씩을 받겠습니다!” 선포를 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에 가면 ‘목사’는 ‘사장’이라고, 교회는 ‘집단’이라고 불러야 한다.” 하는 분들도 있고 ‘무어 그럴 필요가 있느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에 속했습니다. 그러면서 “여러분, 목사, 장로, 집사, 이런 말들,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사용하면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겸손하고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어서 ‘어, 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네!’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간접선교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중국선교방법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라는 소리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서는 교회와 관련해서 선교사들의 계속되는 비자발적 출국, 체포, 교회 건물 파괴, 이런 험악한 말들이 연이어 들리고 있어서 이번에는 방침을 바꾼 것입니다.

저는 그 청년에게 “천지 바로 밑까지 맑았는데 천지에 이르면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일이 흔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많으니까 모르지!”라고 대답했습니다.

드디어 정상에 올랐습니다. 천지를 보았을까요? 보지 못했을까요? 보지 못했다면 이런 글을 쓸 수 없었겠지요.

천지를 보고 내려오는데 “와-”하는 함성이 터지면서 앞서 내려가던 청년들이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하늘에는 무지개가 영롱한 빛을 발하며 떠 있었습니다. 백두산에서 무지개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아, 무지개를 보여주기 위해 빗방울이 뿌렸나보다!’

   
▲ 백두산의 쌍무지개 ⓒ유관지 제공

다시 걷기 시작하려는데, ‘어, 쌍무지개네!’라는 외침이 들렸습니다. 다시 하늘을 보았습니다. 평소에 평지에서도 보기 힘든 쌍무지개를 백두산에서 보다니!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 그 날에는 더 아름다운 쌍무지개를 보여 주실 거죠?’하였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그 날’이 어떤 날이냐고요? 천지에서 일행에게 “나는 동파를 뺀 세 코스를 모두 밟아 보았다.”고 자랑 비슷하게 말했습니다.

제6기 중국평화발걸음 참가자는 남한 사람들을 비롯하여 재중동포․재일동포․한족 등 다양하게 구성되었는데, 재일동포 가운데 조총련 계열의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조총련(정확한 이름은 ‘총련’)이라고 하면 남한 사람들에게는 ‘붉은 쪽 사람들’ ‘위험한 존재들’ 이렇게 인식되어 있었지요.

1980년대 후반까지, 여권이 자유화되어 있지 않을 때는 여권을 신청하려면 소양교육을 받고 그 필증을 첨부해야 했습니다. 그때 받은 소양교육 가운데 이런 내용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 일본에 가시면 ‘대동강’ ‘압록강’ ‘묘향산’, 이런 이름이 붙은 음식점에는 될 수 있는 대로 들어가지 마십시오. 조총련계가 경영하는 음식점일 가능성이 높은데 그런데 들어가면 위험합니다!”

반드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 것이 축구선수 정대세였지요. 정대세 선수와 관련된 인터뷰에는, 남한이 어려워서 재일동포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할 때 북한쪽에서 여러 가지로 지원해 주니까, 특히 학교를 세워서 자녀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 주니까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는 이야기가 거의 빠지지 않았습니다.

총련 청년 두엇이 제 말에 대해 “저희는 동파로도 올랐습니다!”라고 응대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총련 학생들은 북한에 한 달 정도 수학여행을 다녀오는데 그때 백두산을 오르거든요.”
“부럽네! 나도 그리로 오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 때는 힘이 없어 못 오를거라. 나는 퇴행성 관절염 플러스 신경관 협착증을 가진 7학년생이거든! 이번에도 단장이라는 책임 때문에 억지로 올라왔거든!”
“아니에요. 동파에는 케이블카가 있어서 오르기 쉬워요.”
“오, 그래?”
“그리고 동파로 오르면 천지에 내려가서 물에 손을 담글 수 있어요!”
“와, 그 날이 빨리 왔으면 더 좋겠네!”
‘그 날’은 그럴 수 있는 날을 말합니다.
그 날이 오면 우선 마음속에 찬란무비(燦爛無比)의 쌍무개가 환하게 뜨겠지요.

   
▲ 백두산 정상에 선 제6기 중국평화발걸음 참가자 일동. 앞줄 오른쪽에서 여섯 번째 빨간 모자 쓴 사람이 필자. 모두 앞을 보고 있는데 왜 혼자서 밑을 보고 있었을까? 올라온 길이 너무 힘들어서였을까? ⓒ유관지 제공

통일선교운동은 앞이 잘 안보이는 가운데 비바람 속에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백두산에서 쌍무지개를 보고 돌아온 다음에는 그 비바람 속에 쌍무지개가 감추어져 있다는 생각이 더해졌답니다.

유관지/ 북한교회연구원 원장

유관지  yookj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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