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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냉전 시절에 얻었어야 할 교훈

한반도에서 전쟁이 멈춰선지 올해로써 70년이 넘었다.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민족 내부의 전쟁에서, 유엔과 중국의 참전 이후, 국제전쟁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미국과 소련이 주도하는 국제 냉전질서 속에서 분계 철선으로 잘린 한반도는 냉전 시대의 이념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정치와 사상에 있어서 제한이 컸고 사회적으로 병영문화가 두텁게 자리 잡았다. 1989년 12월 몰타에서 있었던 미·소 정상에 의한 탈냉전(脫冷戰)선언은 국제 질서 전변(轉變)의 신호였다. 북한과 체제 경쟁을 벌여 온 우리나라가 소련과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 국교를 수립하면서 탈냉전의 급물살이 한반도 냉전 구조를 무너뜨릴 것 같았다.

1991년 9월 남과 북은 유엔에 차례로 가입했다. 같은 해 12월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으로 남북은 상호체제 인정과 상호불가침을 약속했다. 남북 간의 사실상 평화협정 체결이었다. 안타깝게도 이후 북한이 미국, 일본과 국교 수립에 실패하면서 한반도에서는 냉전 구조가 개혁되지 못한 채 그대로 남게 됐다. 국제화된 한국전쟁 끝맺음에는 국제합의가 필요하다. 휴전상황 관리를 위해 임시로 설치한 유엔사와 주한미군 문제가 남았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관련해서는 입장을 바꾼 북한이 철수를 전제로 하지 않는 평화협정 체결을 거듭 강조한 바 있다. 문제는 북한을 믿을 수 없다는 한국과 미국의 국내 여론이다.

2018년과 2019년 남북과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은 핵 문제 해결 관련 체제 보장을 우선시했다. 그렇지만 우리와 미국은 체제 보장에 대한 확신 대신 경제발전을 강조하면서 정책적, 전략적 오류를 드러냈다. 무엇이 원인이었을까? 가장 큰 원인을 꼽자면 3대 세습의 독재정권을 인정한다는 부담감이었을 것이다. 2002년 부시 정부는 이란, 이라크와 함께 북한을 ‘악의축’으로 규정했다. 2003년 유엔인권위원회가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하고 미국은 2004년 북한인권법을 채택했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북한의 국제 이미지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독재국가’이다. 이런 북한과 타협하는 모습은 국내정치적 타격을 감수해야 할 터였다.

문재인 정부가 표방했던 한반도 정책은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완성하기 위한 경로에서 나온 최신 버전이었다. 이는 남북관계 대장전(章典) 격인 남북기본합의서의 기초였던 기능주의 이론에 따른 것으로 노태우 정부에 이어 김대중 정부, 그리고 노무현 정부가 심화시켰던 경로였다. 전쟁을 통한 평화가 아닌 ‘평화적 방법에 의한 평화’를 추구한다면 정권에 상관없이 걷게 되는 길이다. 그런데도 북한과의 평화공존을 수용하지 못하는 보수적 여론 지형이 존재하는 한 쉽지 않은 길임은 분명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오래전 독립된 국가로 자리매김한 북한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 제3조의 규정과 국가보안법도 북한을 일반적인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 30년 넘는 탈냉전 시기 국제사회는 물론 우리 스스로 한반도 냉전질서 개혁을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 대북관이나 통일방안에 있어서 국민적 공감대와 합의를 바탕으로 제도개혁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질서는 다시금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평화학자 요한 갈퉁이 정의한 소극적 평화마저 흔들릴지 모르는 불안한 정세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열전과 냉전의 각축 속에서 형성된 남북관계는 국제역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녔다. 그렇다고 남북이 냉전에서 탈냉전이 아닌 냉전에서 열전으로 후퇴하는 경로를 밟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월 우크라이나를 방문해서 정상회담을 갖고 인도적 지원과 재건사업지원을 약속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9월 푸틴 대통령을 만나 군사, 농업, 우주개발 등 각 분야에서 협력을 약속했다. 혹자는 이러한 남북의 움직임을 보고 우크라이나에 한반도 냉전을 수출하게 됐다고 평가한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11월 프놈펜에 이어 올해 4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이 만나 동맹은 아니지만 ‘사실상의 동맹 관계’를 구축했다고 우려한다. 그동안 한·일 간 역사문제가 걸림돌이 됐었다면 윤 정부 들어서서 걸림돌을 제거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응하는 북·러, 중·러 회동을 놓고 거울영상효과라 평가하기도 한다.

지난 30년의 탈냉전 시기를 복귀해보면 얻을 교훈이 있다. 먼저, 북한은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국제사회에서 독립적인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이는 우리 헌법 3조의 규정에서 선언한 영토조항이 국제적으로 유효하지 않음을 뜻한다. 이미 한국전쟁 당시 수복지구를 넘어 북한지역으로 행정관을 파견했던 이승만 정부는 미국의 반대로 철수시켜야 했다.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38선 이남에 한정됨을 입증한 것이다. 미국은 중국과의 전쟁이 부담스러웠고 3차 대전으로 확전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해 미국의 국익에 따른 조치이기도 했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고 현실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대북관을 정리해야 한다.

다음으로 우리의 소원은 어떤 통일인가 진지하게 따져봐야 한다. 우리나 북은 이제 흡수통일의 비현실성을 이해해야 한다. 북한은 2021년 제8차 전당대회에서 노동당 규약을 수정하면서 남조선 혁명론을 지웠다. 이는 Two Korea 전략의 시그널로 읽힌다. 한편 우리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제시하고 있는 3단계 통일방안은 점진적, 단계적 과정을 전제로 한다. 최종 단계 통일은 지금으로서는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교류와 협력을 통해 남북연합을 추구함이 현실적인 목표가 돼야 하지 않을까? 유럽연합이 대표적 모델이다. 정치와 군사체제를 통합하지 않고 사회, 경제적으로 교류하는 통합시스템. 물론 현재로서는 교류와 협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처지이다.

마지막으로 통일문제의 정치화를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해야 한다. 정파를 초월하는 국민적 합의가 바탕이 되어야 북한을 상대할 때 유리하다. 인구학적으로 2:1 구도에서의 국론분열은 북한을 이롭게 할 뿐이다. 멀리 보고 좌우로 봐야 한다. 길이 없는 게 아니다. 우리의 눈과 귀가 닫혀있을 뿐이다. 평화를 완성한다면 한반도는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그리고 멀리 중동에 이르기까지 평화 담론을 생산하는 평화기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남북관계를 성찰하며 역사 속에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좀 더 치열하게 해야 한다. 오늘날 답보 상태에 빠진 남북관계를 돌아보며 많은 당사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해법을 모색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때가 되면 모자이크 조각이 맞춰지는 것처럼 선명한 그림이 등장하길 바란다.

윤은주/ (사)뉴코리아 대표, 북한학 박사

윤은주  ejwarri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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