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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가치를 확신하는가?평화통일연대 '평화칼럼'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사람다움의 기본이다. 사람은 신체적인 조건만 충족되면 사는 존재가 아니다. 먹거리가 부족하지 않고 배만 부르면 사는 것이 아니다. 신체적인 상황은 정신적인 상태와 뗄 수 없이 연결돼 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람이 영적인 면을 갖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영과 혼과 육은 한데 어우러져 작동한다.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다.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 중에서 평화가 참으로 중요하다.

성서의 가르침에서 평화의 가치는 본질적이다. 창세기의 창조 기사를 보자. 하나님의 창조에서 골격은 무(無)에서 유(有)로,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다. 절대 무에서 무엇이 생겼다. 그 유는 우선은 혼돈과 공허로 표현된다. 창세기 1장 1절과 2절을 보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1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2절)

1절은 창조에 관한 서막 또는 총론으로 볼 수 있지만, 절대 무에서 유가 생긴 것을 말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2절은 그 유가 우선은 혼돈과 공허의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2절은 지나가는 징검다리다. 바로 3절부터 혼돈에서 질서로, 공허에서 알차게 채워지는 쪽으로 창조의 작업이 이어진다. 그렇게 알차게 채워지면서 존재의 아름다움에 관한 감탄이 이어진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평화와 질서는 뗄 수 없다. 공허하고 무료한 상태에서는 혼란과 무질서가 발생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 나름의 존재 목적에 따라 알차게 채워지고 그로써 생기는 보람과 기쁨으로 평화가 흐른다. 평화는 혼란이나 갈등이나 전쟁이 그저 없는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말하는 평화는 질서와 아름다움이 최고조로 작동하는 적극적인 상태다.

창조의 초점은 창세기 1장 26~28절에 기록된 사람의 창조다. 26절은 구상, 27~28절이 실행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에게 사명을 주신다. 1장 3절 이하에서 진행된 질서와 아름다움을 보존하고 가꾸는 일이다. 28절의 표현, “충만하라 … 정복하라 … 다스리라”는 결코 제국주의적인 독점과 착취를 말하지 않는다. 인간 중심적인 이기적인 세계관을 뜻하지 않는다. 기독교 신학은 이 구절에 관한 과거의 오류를 이미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타인(他人) 곧 이웃에게 좋은 동반자요 타자(他者) 곧 지구 환경에게 선한 청지기로서 돌봄과 섬김과 사랑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사람 창조의 본문에서 혼돈에서 질서로, 공허에서 알참으로 진행되는 작업이 아주 뚜렷하게 결론에 이른다.

창조의 절정은 안식일의 제정이다. 창세기 1장의 모든 것이 창조에 관한 것이니까 안식에 관한 본문은 ‘안식의 창조’라고도 할 수 있다. 안식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안식’이다. 사람이 쉬는 것이 아니라 엿새 동안 창조의 작업을 하신 하나님이 쉬신다. 그 하나님의 안식에 혼돈과 공허가 있을 자리가 없다. 아름답게 진행된 창조에 연관된 보람, 기쁨, 감격이 넘친다. 바로 그 자리에 사람을 비롯한 창조 세계가 초대된다. 특히 사람은 그 안식에서 하나님의 평화를 깊이 배우며 누린다. 창조의 근본 방향이 평화와 사랑이라는 것을 말이다.

창조의 평화가 타락으로 깨진다. 죄악이 세상에 넘친다. 혼돈과 무질서, 공허와 탐닉이 깊어진다. 죽음이 인간의 운명이 되고 창조 세계도 그 세력에 짓눌린다. 이런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사람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의 왕이시다. 예수님은 돈이나 인기나 무력으로 세상을 구원하라는 온갖 유혹을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걸어간 구원의 길이 십자가였고 그 내용이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평화다.

사람의 말과 행동 등 밖으로 나타나는 모든 것은 마음의 가치관이 어떠하냐에 걸려 있다. 그리스도인과 교회에 평화의 가치관이 분명한지 성찰해야 한다. 명목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면서도 나와 다른 편에 선 사람들이나 집단을 향해 독한 미움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갖고 있는 선입관을 절대 선이라고 정당화하거나 착각하면서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수많은 갈등 요인 중의 또 하나가 돼 있는 것 아닌가.

대통령 선거와 연관된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선동하는 사람들의 의도가 뻔한 것을 알면서도 편 가르기에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도 다르지 않다. 다시금 통절하게 우리의 가치관을 점검해야 한다.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과연 평화의 가치를 확신하는가? 다시금 성서의 가르침을 묵상하며 그 위에 기독교 신앙의 집을 새롭게 지어야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군비 확장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다. 한국 교회는 중국과 일본과 대만 등 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과 연대하여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를 찾아야 한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으로 유럽뿐 아니라 세계가 불안해하고 있다. 평화의 기초인 자유와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가 시험대에 올라 있다. 평화를 위한 한국 교회의 기도와 행동이 절실하다. 21세기 인류의 시간이 야만의 시대로 퇴행하지 않도록, 다시금 깊이 평화의 가치를 확인하고 확신해야 한다.

지형은/ 말씀삶공동체 성락성결교회 목사,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장, 평화통일연대 이사

지형은  sungnak2005@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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