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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를 남북교류협력부로!평화통일연대 '평화칼럼'

나는 기존 ‘통일부’ 대신 ‘남북교류협력부’로 이름과 성격을 변경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꽤 시간이 흐른 필자의 제안이지만, 다시 꺼내는 이유는 어려운 남북관계에서 우리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를 살펴보면 한 마디로 통일부는 수장인 대통령의 부속기관일 뿐이었다. 한 예로, 국가정책기관인 통일연구원은 일관성 있는 통일정책의 연구기관이 아니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연구 방향과 주제가 바뀌어야만 했다. 통일부 장관은 할 일이 없었고, 한 장관은 “통일부 장관은 아무나 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통일이라는 단어가 서로에게 주는 지향점은 같지 않다. 순수한 개념의 통일이 서로에게 긍정적이라기보다는 이미 부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기에 통일이라는 단어의 새로운 대체용어가 요구되는데, 당사자에게 긍정적이고 신뢰를 주며 소망을 주는 참신한 용어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통일을 대체하는 단어는 ‘남북교류’가 아닐까 생각한다. 실질적인 면에서도, 남북의 교류 없이 과연 바람직한 통일이 가능할지? 아무런 대화도, 교류도, 소통도, 왕래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오는 통일은 과연 어떤 통일일지? 

남북은 1945년 분단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고 처절하게 나누어졌고, 싸웠으며, 서로를 정죄하는 단절을 살고 있다. 그런데도 어느 날 갑자기 오순도순 함께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말인지? 이념적으로도 거대한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거기다 내식으로의 하나 됨을 강조하고 고집한다면, 어떤 결과를 맞게 될 것인지? 통일 이후 나타나는 후유증으로서의 부작용 내지 요구되는 적응 기간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서로 함께 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창의적으로 준비하는 단계가 요구된다는 말이다. 남녀가 서로 알아가고 사귀는 연애 기간을 가진 후 비로소 한 가정을 이루는 혼인과 다르지 않다. 

통일 전 ‘이미의 통일’이 없이 미래 불현듯 찾아오는 통일만으로는 솔직히 불안 천만이다. 신학적으로도 이미 누리지 않은 천국 없이 온전한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는 천국의 삶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므로 남북교류협력부는 적극적으로 ‘이미의 통일’을 이루는 과업에 집중한다. 남북교류협력부가 남북의 교류와 협력을 할 때, 불필요한 오해나 왜곡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부서의 이름에 맞는 일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땅과 법의 통일에 앞서 남북의 교류 협력은 광범위하게 전개되어야 할 것이기에,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과정이라 할 것이다. 게다가 남북교류협력부는 이름에 맞게, 민간교류 시대를 여러 방면에서 적극적으로 열 것을 기대한다. 그럴 때 순수한 사랑에 입각한 북한을 향한 교회의 인도주의 활약은 새로운 시대를 꽃피우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남북교류협력부는 헌법적 독립기관으로 격상하여, 국회를 통과한 후 대통령이 장관을 인준해야 한다. ‘남북교류협력헌장’에 따라 남북교류협력부는 주어진 업무를 감당할 수 있도록, 헌장을 국민투표로 결정하면 좋을 것이다. 장관의 임기는 대통령의 임기와는 어긋나게 하여, 정권과는 독자적으로 자유롭게 민족의 백년대계를 꾸려가게 함이 좋을 것이다. 그렇게 될 때 파트너인 북한과의 교류 협력 및 통일정책은 일관성을, 남북관계는 서로의 신뢰 속에서 영속성을 가질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남북 서로 간 교류 협력하는 일에 치중하게 되어, 작은 발걸음으로 알게 모르게 서로를 이해하게 되어 어느 날 오순도순 함께 살 수 있는 하나 됨에 가까이 다가갈 것이다.

이에 대한 오늘의 예도 있다. 서독과 동독이 통일보다는 교류로 동서 관계를 풀어냈다. 동서독 교회가 담당했던 사랑의 민간교류로 국가 대사인 통일을 ‘조용한 개신교 혁명’으로 무리 없이 이루어낼 수 있었다.

주도홍/ 총신대 초빙교수, 평화통일연대 공동대표

주도홍  joud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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