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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위기 징후 속에 자리 잡은 한반도 평화의 기회평화재단 현안진단 제273호

위기로 시작하는 2022년 세계의 아침

새해 벽두부터 위기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오미크론 바이러스의 세계적 확산으로 ‘코로나 이후’의 상상력이 갈수록 위축되는 가운데, 세계 여러 곳에서 평화의 상상력도 같이 위축되고 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지난 2일부터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고, 토카예프 정부의 무자비한 유혈진압으로 200여 명이 숨지는 사태로 발전했다. 토카예프 정부는 러시아가 주도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 지원을 요청했고, 2,500명의 러시아군이 평화유지군으로 개입했다. 시위는 진압되어 안정화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으나,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이번 사태 자체가 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 일어난 인플레이션 상승, 실업률 폭증, 1인당 부채 증가, 도시봉쇄에 따른 소득감소로 인한 삶의 질 하락과 이에 대한 민중들의 불만이 누적되어 일어났기 때문이다.

카자흐스탄에서 시위가 소강상태로 접어드는 와중에 우크라이나에서 긴장이 고조되었다. 지난해 11월 러시아는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동부 국경선 부근에 총 10만 명의 대규모 병력을 배치한 데 이어, 최근 우크라이나 북쪽 우방국인 벨라루스에도 군 병력을 집결시켰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추진을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며 이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동맹 복구와 가치외교를 강조하는 미국 바이든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선택이 민주주의 수호와 자유주의 국제질서 유지에 기여하는 것으로 보고 이를 지지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21일 미·러 외교장관이 만났지만 뚜렷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입장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사태는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 문제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21일(현지 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나 이 문제를 논의했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가 초래한 위기

유라시아의 중앙과 서쪽에서 판이 흔들리는 가운데, 동쪽 끝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가 판을 흔들고 있다. 지난 5일 북한이 자강도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미사일을 발사하고,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에 우리 국방부가 극초음속 기술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발표하자 북한은 11일 다시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했다. 미국에서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직후 연방 항공청이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을 비롯한 미 서부 공항에 15분간 이륙금지 조치를 시행하기도 했다. 북한은 미국의 반응을 보면서 미사일로 미국을 움직일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14일 북한은 또 다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두 발 발사했다. 12일 미국이 유엔 안보리에 제재를 요청하고 독자적인 제재조치를 취한 데 대한 반발로 해석되었다. 미사일 발사와 함께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이 북한의 합법적인 자위권 행사를 걸고 들며 강도적 논리로 도발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같은 날 유엔에서는 미국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와 일본, 아일랜드, 알바니아 등 6개국이 북한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특히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 유엔 미국대사의 발언에서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가 부활했다.

이에 반발하듯 북한은 다시 17일에도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강행하고, 19일에는 당 정치국회의에서 “선결적으로 주동적으로 취하였던 신뢰구축조치들을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신속히 검토해볼 데 대한 지시를 해당 부문에 포치”했다고 밝혔다. 즉 북한이 핵실험과 대륙간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등 2018년 북·미 정상회담 이후 잠정 중단해 왔던 군사적 조치들을 재개할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북한은 그 동안 종전선언의 선결 조건으로 제시했던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미사일 개발의 이중기준 철회 등이 수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자체적 방위력 강화에 나서는 모습이다.

희미하나마 종전선언에 대한 기대로 출발했던 2022년, 연초부터 계속된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는 지속가능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지난한 과제임을 다시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렇다고 2018년 이전으로의 회귀를 쉽게 언급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미사일 시험 발사가 가져다 준 복합적 파동

무엇보다 북한의 행동이 복합적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미사일 시험 발사와 동시에 국경을 개방했다. 북한은 네 번째 미사일 시험 발사 직전인 16일, 북·중 간 열차 운행을 재개했다. 중국 외교부는 이 운행이 북·중 간 협의를 거쳐서 시행된 것임을 밝혔다. 중국 당국은 열차 운행이 갑작스러운 비상조치로 취해진 것이 아니며, 법제 정비와 방역 시설 구축 등 준비를 거쳐서 실시된 것임을 확인해 주었다. 북·중 간 열차 운행이 중국의 협조로 이루어졌다면,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긴장 고조를 원하지 않는 중국의 입장은 사태를 진정 국면으로 들어서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향후 북·중 간 열차 운행이 정기 운행으로 이어진다면 국경 개방이 확대될 수도 있다.

미국과 일본의 대응도 복합적이다. 당연하지만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는 일본에서 방위력 강화 논쟁을 촉발했다. 그러나 논쟁이 북한의 행동으로 특별히 가팔라진 것이라고 하긴 어렵다. 일본은 7일의 미·일 안보협의위원회, 이른바 미·일 외교 및 국방장관의 2+2 회담에서 적기지 공격능력 보유 의지를 미국에 전달했으며, 공동 발표문에 이를 검토 추진한다는 언급을 포함시켰다.

이는 5일의 미사일 시험 발사 직후라서 특별히 주목을 받았으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갑자기 추진된 것이 아니다. 적 기지 공격능력 보유 논쟁은 아베 내각에서부터 이미 개시된 것이었으며, 아베 내각에 이어 스가 내각마저 퇴진하면서 중단되고 지연되었을 뿐이다. 지난해 12월 6일에는 기시다 수상이 소신표명 연설을 통해 적 기지 공격능력 보유를 검토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따라서 위의 언급은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이라기보다는 그 동안의 논의를 미·일 간에 확인한 정도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17일의 네 번째 미사일 시험 발사 직후인 18일에는 기시다 수상의 시정방침 연설이 있었다. 여기에서도 북한과 관련해서는 일반적인 언급이 있었을 뿐이다. 납치문제 해결을 가장 중요한 외교 과제로 보고 이를 위해 적극 나설 것이며, 김정은 위원장과 조건을 두지 않고 만나겠다는 틀에 박힌 말이다.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 문제도 재천명되고 있지만, 안보 전반에 대한 입장 표명 속에서 북한의 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대한 일반적인 언급과 함께 나오고 있을 뿐이다.

대신 시정방침 연설의 주된 방점은 당면의 임박한 과제인 오미크론 대책과 ‘새로운 자본주의’의 실현에 놓여졌다. 특히 ‘새로운 자본주의’를 기시다 내각의 간판 정책(flagship policy)으로 삼겠다는 의지가 전면에 드러나 있다. 시장에 과도하게 의존한 결과 공평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은 문제가 기시다 내각이 마주한 가장 중요한 과제라며, 전 세계에서 ‘역사적 규모’로 전개되고 있는 ‘경제사회변혁’에 일본도 나서겠다는 것이다. 시정방침 연설의 주된 기조는 격차 문제와 빈곤 등 국내의 사회경제 문제에 집중한다는 데 있었으며, 북한이 시도하는 판 흔들기에 대응할 여력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으로 들린다.

19일에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1주년 기념 기자회견이 있었다. 예정시간을 훨씬 넘겨 111분 이어진 회견은 우크라이나 정국과 중국 정책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기자들의 질문을 포함해서 북한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대미 신뢰조치를 재고하겠다며 북한이 시도하는 판 흔들기에 미국도 반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무반응의 반응을 보였다.

일본 시간으로 21일 밤에 실시된 미·일 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에 따른 긴박함은 보이지 않는다. 비록 영상으로 이루어진 것이긴 하지만 1시간 20분 동안의 본격적인 회담에서 두 정상은 북한 문제에 대해 원론적인 입장을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그 내용은 안보리 결의에 따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미·일, 한·미·일의 긴밀한 연계가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의 지지를 확인한다는 언급에 그쳤다.

 

2022년 연두 동북아 국제정치의 결산

북한이 통상 동계훈련 막바지인 2-3월에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국제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발신해 왔던 것을 생각하면, 새해 벽두부터 연달아 실시된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이례적인 것이다. 더구나 오래 닫혀 있던 북·중 국경 개방을 전후해서 실시된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이한 행동이었다.

만일 북한의 행동이 미국에 대한 대화 촉구 메시지였다면 미국은 이를 무시했으며, 일본도 이에 동조했다. 결과적으로 극초음속 미사일은 게임체인저가 되지 못했다. 다른 한편, 북한의 의도가 국경의 부분 개방을 앞두고 국제사회의 압력에 굴하지 않겠다는 북한의 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하는 것이었다면, 미국과 일본은 무반응의 반응으로 북한에 선택의 여지를 남겨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선택은 북한의 몫이 되었다.

새해 벽두 카자흐스탄과 우크라이나 등 러시아 주변에서 벌어지는 국제정치가 미·중 전략경쟁에 러시아 요인을 침투시키면서 그 양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중국은 동쪽에서 미국과 대치하며 서쪽으로는 카자흐스탄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는 데 대해 경계의 눈으로 사태를 바라보고 있다. 미국은 중국과의 주전선에 더해 러시아와 보조전선을 만들 여력이 없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행동을 제어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중국과 미국의 전략경쟁이 하향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북한이 나서서 판을 흔들어 평화프로세스가 위기를 맞이하고 있으나, 2018년 이전으로의 회귀가 임박한 것 같지는 않다. 미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도 2018년 이전의 위기를 감당할 의사도 능력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러시아를 포함해 한반도 주변국이 모두 국내 문제와 새로운 위기에 대응하는 동안, 한국에게는 외교의 공간과 방향을 새롭게 인식해야 할 과제가 던져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랍 순방 중에 “평화 구축은 쉽지 않아 보인다”면서도, “평화로 가는 길이 아직 제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종전선언이 평화의 제도화를 위해 물꼬를 틀 수 있다는 것을 다시 강조한 말로 들린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기로에 선 듯 보이지만, 어느 길을 선택하건 그 길은 적어도 2017년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길은 아닌 것 같다.

과연 우리는 2022년에 평화의 희망을 이어갈 수 있을까? 북한이 시도한 일련의 미사일 시험 발사는 우리의 준비와 노력에 따라서는 세계적인 위기 징후 속에 오히려 한반도 평화의 불가역성을 확인해 주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미사일이 전쟁과 긴장고조만을 수반한다는 가설을 허문다면 어쩌면 평화는 이미 현실 속에 살짝 터를 잡고 내려 앉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평화재단  hyeonan@p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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