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급부상, 어떻게 볼 것인가?


9월 22일 UN총회 참석 후 박 대통령이 뉴욕 맨해튼 서튼플레이스에 위치한 유엔 사무총장 관저에서 반기문 장총과 유순택 여사가 지켜보는 가운데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있다.

높은 인지도, 타의 추종을 불허

반기문 총장은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적인 외교 거장이다. 정갈하고 세련된 그의 외교 역량과 세계를 누비는 그의 행보는 우리 국민에게 더 없이 뿌듯하고 자랑스런 지도자 그 자체일 것이다. 그만큼 반기문 총장은 우리 국민 모두의 가슴속에 이미 ‘세계적인 외교 대통령’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국민들 가운데는 “반기문 총장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됐으면” 하는 생각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이다. 바로 이러한 기대치가 높은 인지도와 맞물려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의 대선주자 여론조사의 핵심은 결국 인지도조사에 다름 아니다. 단순하게 보더라도 반기문 총장에 대한 인지도는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압도하고 있다. 설사 그들이 반 총장에 버금가는 인지도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지율 조사에서는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박원순 시장과 김무성 대표는 특정 정당에 소속돼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인지도 가운데 절반 정도는 떨어져 나갔다는 이야기다. 바로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반기문 현상’이 급부상 할 수 있었다.

탈정치의 뉴 페이스

앞서 설명한대로 반기문 총장은 정치권 내부의 인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정치권 내부의 인물, 이를테면 박원순 시장이나 김무성 대표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보이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우선 지금의 시점에서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너무 높다. 여야를 넘어서 정치권에 대한 비판과 질타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차기 새로운 지도자를 정치권 내부에서 찾을 확률은 그만큼 떨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외부에는 반기문 총장이라는 변수가 있다. 이를 감안할 경우 굳이 정치권 내부의 인물을 선택할 이유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효과가 이번 여론조사에 반영됐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리고 하나 더 짚어야 할 대목은 민주화 이후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농축돼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까지 ‘안철수 현상’이 그랬듯이 우리 국민은 정치권 전체의 판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지도자를 정치권 밖에서 찾아왔던 것이 단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다. 안철수 의원이 ‘제3의 길’을 버리고 기성 정치에 합류하는 순간 마치 거품처럼 그에 대한 기대치가 꺼져버린 것도 이런 배경일 것이다. 기성의 정치 지형을 구조적으로 바꿀 수 있는 대안, 즉 그런 지도자를 정치권 밖에서 찾고 있었다는 뜻이다. 반기문 총장은 그의 정치력과는 무관하게 탈정치의 새로운 인물로서 그 적절한 대안으로 인식된 것이다. 이쯤되면 그에 대한 압도적 지지의 원인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부인 유순택 여사가 2012년 10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주한대사들과 오찬을 갖고 손벽을 치고있다.

합리적 중도주의자

마지막으로 반기문 총장에 대한 높은 지지율의 바탕에는 그가 ‘합리적 중도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인식과 맞물려 있다. 물론 반 총장은 한번도 그의 정치적 이념이나 신념을 강조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반 총장을 합리적 중도주의와 연결시키는 데는 그의 외교적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 반기문 총장은 노무현 정부 때 외교 장관에서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됐다. 따라서 남북관계를 비롯한 외교적 행보가 이전의 보수적 행보와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실제로 반 총장은 남북관계의 화해와 협력에 상당한 공을 들였으며, 실제로 유엔 무대에서도 대북 강경노선과는 선을 긋고 있다. 기회가 되면 방북하겠다는 뜻도 수차례

밝혔다. 최소한 미국의 대북 강경주의자들과는 차원을 달리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미국과 북한에 접근하는 방식이 새정치민주연합의 강경 주류세력과는 결

을 달리 한다. 최소한 대화와 협력 부분은 공감대를 이룰 수 있지만, 북한의 인권과 핵 위협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외교적 지형으로 본다면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중간적인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인식이 반 총장을 합리적 중도주의자로 평가할 수 있는요소가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그의 직접적인 언급이 없어도 반기문 총장에 대한 외교적 인식의 연장선에서 그의 정치 노선을 이해하는 측면이 강할 것이다. 그렇다 보니 여야를 막론하고 반 총장에 대한 강한 반대 세력이 없다는 강점이 있다. 특히 여야를 아우를 수 있는 합리적 중도주의자라는 인식이 공유되면서 그에 대한 지지는 여야를 뛰어 넘을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그에 대한 높은 지지율은 여기에 기인한 바가 크다. 이 말은 만약 반 총장이 특정 정당에 귀속될 경우 그만큼의 지지율 이탈도 충분히 예견된다는 사실과 일맥상통한다. 인지도에 따른 지지율 한계가 그대로 표출될 수 있다는 뜻이다.

반기문 급부상,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국내에서 반기문 대망론에 대해 반기문 총장은 전혀 아는 바가 없고 사실도 아니라고 밝혔다. 불을 끄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실제로 반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일도 벅찰 것이다. 게다가 국내 정치에 관심을 두고 말 그대로 ‘반 쯤 걸치는 듯한 정치행보’는 그의 스타일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그럴 여력도 없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반기문 총장이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반

총장의 메시지는 그의 측근을 자처하는 인사들이 정치권에 타진했다는 이야기들은 사실이 아니며, 아직은 국내 정치에 관심도 없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정확한 해석이다. 이를 조금 더 전향적으로 해석한다면 지금은 아니지만, 임기를 마친 2017년에는 국민이 원할 경우 대선 출마의 여지는 남겨 놓았다고도 볼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바로 이 대목이 정치권 지형 변화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제69차 유엔총회 개막을 맞아 국왕과 대통령, 총리 등 140여명의 정부 수반을 만나고 각종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새누리당 입장에서 본다면 반기문 카드는 필승 카드가 될 수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선 주자들을 놓고 본다면 새누리당의 전망은 밝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쟁쟁한 야권의 대선주자들이 여럿 있지만 새누리당은 딱히 손에 꼽을 인물이 없다. 특히 친박계는 더 다급한 상황이다. 유기준 의원이 밝힌대로 지금은 아니지만 앞으로 계속 마음에 둘 여지는 충분하다는 뜻이다. 더욱이 반 총장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는 상당히 강한 편이다. 따라서 아무리 반 총장을 흔들지 말라 하더라도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가만히 놓아 둘 상황이 아닌 것이다. 비박계를 넘어서 정권재 창출을 가져올 유력한 인물을 가만히 둘 수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반기문 대망론’은 이쯤에서 접어두는 것이 옳다. 반 총장의 요구대로 따르자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반기문 대망론의 동력은 유엔 사무총장직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의 평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정치 문제에 발목이 잡혀서 반 총장의 임기가 불안정하게 되거나 퇴임 시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면 반기문 대망론도 거기서 끝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반 총장이 남은 기간 유엔 사무총장직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것은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유익하다. 여야 어느 쪽도 이런 행보를 흔드는 것은 옳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당분간은 반 총장을 내버려 두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그때까지는 우리 정치권 안팎에서 새로운 지도자를 고민하고 조금씩 공론화시켜 나가는 것이 적절한 수순이 아닐까 싶다.

박윤희 기자 young9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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