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뉴스=강경윤 기자] 친서민 정책의 중심에는 ‘물가 안정’이 있다. 장바구니를 든 국민들이 매일매일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지표인 만큼 ‘민심’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 초반부터 물가 잡기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최근 5개월 연속 소비자물가지수는 1%대로 안정세를 유지해 ‘물가만큼은 정부가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올 만하지만, 서민생활과 관련이 높은 ‘식탁물가’는 높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임기 첫 미션, ‘식탁물가’ 정책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 물가를 집중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명박 정부가 임기 초기 물가관리 실패로 서민부담을 가중시켰던 점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정권 초기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2월 28일 물가 관계부처 회의를 개최했고,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 생활물가를 집중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발표했다.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 집권 초기 물가 안정 기조를 단단히 다져야 한다고 판
단했기 때문이다.

물가상승률은 ‘안정’, 체감물가는 ‘부담’
박근혜 정부의 목표는 임기 중 선진국 수준의 2%대 물가상승률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4월 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3월 소비자물가동향’ 자료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는 107.4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3% 상승한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1월 1.6%를 기록한 이후 5개월 연속 1%대를 기록하며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도 지속적인 안정세이다.

▲ 3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7.4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3% 상승, 5개월 연속 1%대의 안정세이다.

하지만 통계청의 지표상 물가는 ‘안정’ 됐어도 서민들이 물가 안정을 체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서민생활과 관련이 깊은 신선채소 등 농산물, 전·월세 등 집세, 가스·전기요금 등 공공요금이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계속된 기상이변과 겨울 한파·폭설 등의 피해로 급등했던 신선채소, 신선과실 등 농수축산물 가격은 최근 다소 떨어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신선채소 가격의 경우 지난 2월과 비교해 7.9% 가량 하락했지만, 지난해 3월에 비해 7.6%나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신선과실 가격도 전월에 비해서는 0.5% 상승하는 데 그쳤지만,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3.6%나 값이 뛰었다.

▲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월 23일 오전 서울 송파구 가락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을 방문해 채소를 비롯한 과일들을살펴보고 있다.

특히 우리 국민들의 식탁에 자주 오르는 주요 농산물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다. 양파 가격의 경우 지난해 3월과 비교해 무려 119.5%나 급등했고 당근(177.5%), 배추(70.6%), 파(49.1%), 쌀(5.7%)
등의 가격도 상승했다.

서민물가와 관련이 깊은 각종 공공요금도 오름세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도시가스 요금은 8.9%, 전기료 4.2%, 지역난방비는 6.5% 가량 비싸졌다. 시내버스 요금도 2월에 비해 5.8%, 전년동기 대비 3.1%씩 올랐고, 택시 요금도 5.4%나 상승했다.

연료비도 지난 2월과 비교해 휘발유는 2%, 경유 1.4% 등으로 올랐다. 집세도 상승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전세 3.3%, 월세는 1.9% 상승했다. 2월과 비교해도 전세 0.3%, 월세는 0.2% 가량 상승하며 오름세가 계속됐다.

가계지출에서 만만찮은 비중을 차지하는 자녀 교육비도 상승했다. 신학기를 맞아 고등학교 교과서 가격은 2월에 비해 14.1%나 급등했고, 학원비는 지난해와 비교해 중학생 6.2%, 고등학생 7.5% 등으로 비싸졌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3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1.3%를 기록해 5개월 연속 1%대 안정세를 유지했다”며 “기상여건 개선으로 농산물 가격이 2월에 비해 하락하고, 보육료 등 정책지원 효과가 크게 작용하면서 전월 대비 하락세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체감물가 잡기 위한 ‘협동조합’ 안
박근혜 대통령은 2월 27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첫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서민생활과 밀접한 관계인 품목의 가격 인상으로 인해 최근 저소득 서민층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가격 인상 요인을 최소화하고 부당 편승 인상에는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는 등 관계 당국이 물가 안정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주문했다.
물가 안정을 위한 첫 시동이었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는 서민 체감물가를 잡기 위한 아이디어로 ‘협동조합’안을 내놨다.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대의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서민들의 체감물가가 낮아지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협동조합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정부는 3월 15일 신제윤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물가 관계부처 회의를 열고 ‘협동조합 활성화를 통한 생활물가 안정 방안’을 논의했다. 정부가 협동조합을 들고 나온 것은 소비자와 생산자의 직거래 활성화, 대기업과의 경쟁 촉진 및 교섭력 강화로 가격 급등 및 변동성을 완화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11월 보고서를 통해 협동조합을 활성화할 경우 농산물 가격, 서비스 요금 등 생활물가를 낮춰 전체 물가지수 인하(3.14%p)를 유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협동조합 간 연대를 강화해 농협, 수협 등 기존협동조합과 유통·물류·가공 시설 공동사용 등을 통해 규모의 경제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울 방침이다.

조합원이 모여야 만들 수 있는 협동조합 설립 자체는 정부가 관여할 수 없기 때문에 협동조합 운영여건을 활성화시킨다는 복안인 셈이다.

물가안정 필요해도 ‘관치(官治)’ 회귀는 피해야
박근혜 정부가 물가 안정을 강조하자 대형마트들도 물가를 잡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이마트는 대형 할인행사를 진행한 지 열흘도 되지 않아 또다시 2500여 품목에 대한 최대 반값행사에 돌입했다. 롯데마트도 생활필수품을 최대 반값으로 파는 ‘통큰 창립 15주년 행사’를 여는 등 정부와 ‘코드 맞추기’에 나섰다.

김형석 이마트 마케팅 담당 상무는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물가 안정을 위해 주요생필품을 위주로 더욱 강력한 행사로 준비했다”며 “앞으로 ‘산지직송’, ‘해외직송’, ‘병행수입’, ‘사전매입’ 등 최대한 가격인하 방법을 동원한 ‘유통구조 혁신’으로 소비자물가를 낮추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할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물가에 직접 개입하는 등 경제 현장에 대한 관리 수위를 높이면서 관치(官治) 그림자가 짙게 깔리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3월 13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례적으로 휴대폰 보조금 문제를 직접 챙기겠다고 천명했다.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회의에서 최근 이동통신 3사의 단말기 보조금 과다 지급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어 이동통신시장 과열에 따른 제재와 제도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박근혜 대통령이 2월 27일 오전 청와대에서 첫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정치, 경제 현안 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청와대까지 나서서 직접 개별 기업 문제를 다루는 것은 70~80년대 관치경제로 회귀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

또한 지식경제부가 최근 물가 안정을 위해 대형마트 임원들을 소집해 ‘군기 잡기’에 나섰으며 금융 당국이 보험사 임원들을 불러 보험료 인상에 직접 제동을 건 것은 전형적인 관치경제의 행태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인정하더라도 지금처럼 거시경제 정책조차 불안한 상태에서 기업의 목줄만 죄는 단순한 방식으로 경제를 운용하려는 행태는 자칫 시장질서를 크게 교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MB 정부도 물가 관리를 위해 관치 통제정책을 펼쳤지만 결국 고성장을 목표로 내세운 고환율·저금리정책에 발목 잡혀 물가 잡기에 실패했다.

당시 경제 전문가들은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 출신 관료들이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관치 통제정 책으로 물가 잡기에 나서 실패한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지만 지금은 물가 안정보다는 경기 활성화를 위한 경제정책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일본의 엔저 공세와 세계 각국의 경기부양책으로 유발된 환율전쟁으로 우리 경제는 지금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해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옛 향수를 버리지 못한 관치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 재계와 금융권의 주장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정부가 생필품부터 보험료까지 직접 개입하는 것은 행정지도를 넘어서 시장을 왜곡시키는 관치로밖에 볼 수 없다”며 “과거 관치의 악습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창조경제를 위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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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윤 기자  ggangky@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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